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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탤지어

    러시아 예술가의 향수병이 물씬한 고독 이야기

    고향이나 조국이 떠난 예술가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특히 러시아인들에게는 좀 유별나 보인다. <노스탤지어>에서 볼 수 있는 러시아 예술가의 향수병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처절하며, 또 전혀 변함이 없다. 18세기에 실존했던 러시아의 음악가 파벨 소스노프스키는 농노의 신분으로 지주의 후원을 받아 이탈리아로 음악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향수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귀향한 뒤, 술에 절어 살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 소스노프스키의 발자취를 따르던 소련의 시인 고르차코프는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고향과 고향에 두고 온 아내, 자식들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여기까지가 영화 속의 과거와 현재다. 그렇다면 미래는? 바로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삶이다. <노스탤지어>를 만든 직후 서방세계로 망명한 그는 이후 <희생>을 만든 뒤 암으로 사망하고 만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소스노프스키), 현재의 영화 속 현실(고르차코프), 미래의 현실(타르코프스키)이 모두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즉, 소스노프스키가 곧 고르차코프이며, 고르차코크가 또한 타르코프스키이다. 

    영화는 '관찰'이라는, 평범하지만 잊고 있던 진리를 깨우치며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타르코프스키는 <노스텔지아>에서 시간을 자신의 영화 속에 가두고 공간을 재구성한다. 그래서 결코 어떤 상징적 의미로도 해석되기를 거부했던, 그의 영화 속에 미장센은 가장 강렬한 영상언어이자 '타르코프스키풍의 영화'를 규정하는 절대 요인이 된다.

    <노스탤지어>에서는 물과 불로 상징되는 '향수'와 '희생'이 의미화가 두드러진다. 타르코프스키의 뇌리 속에 고향은 비가 자주 구성지게 내리는 곳으로 각인돼 있다. 그래서 <노스탤지어>에서도 비나 물은 고르차코프의 향수를 일깨우는 중요 모티브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 물은 불과 만나면서 인간의 이기주의를 꾸짖는 고귀한 희생정신의 모티브로 발전한다. 고르차코프가 투스카나 언덕에서 만난 광인 도메니코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로마 광장에서 스스로를 불사르며, 이 순간 고르차코프는 도메니코와 약속한 대로 말라버린 야외 온천탕에서 촛불을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나른다. 그리고 영화는 이탈리아식 성당에 둘러싸인 러시아의 농가 (집 앞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고르차코프와 타르코프스키가 타국에서 느끼는 향수임과 동시에 고르차코프와 도메니코의 연대의식을 의미한다.

    이처럼 불로 상징되는 '희생'과 '구원의식'은 그의 다음 작품이자 유작인 <희생>으로 이어진다. 이 고르차코프와 도메니코의 연대는 비범한 첫 만남에서 비롯되는데, 고르차코프가 도메니코의 연대는 비범한 첫 만남에서 비롯되는데, 고르차코프가 도메니코의 집 안넹 처음 들어설 때 물이 고여 있는, 빈 창고 같은 공간에서 그는 갑자기 고향의 산하를 본다. 이 독창적인 공간 구성 방식은 '시간의 개인적 흐름'과 일상적 삶에서 비롯된 꿈과 환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즉, 그의 공간 구성은 그의 영화 속에서 언제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세계화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가슴과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기억과 환상의 공간이 혼합되는 독특한 세계인 것이다.

    영화사상 이렇게 독특한 시공간을 보여준 감독은 없었다. 이러한 그의 영화세계는 그 동안 널리 알려지지 못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영향을 받은 다른 감독들의 작품을 통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뉴질랜드의 빈센트 워드, 영국의 마이클 래드퍼드, 그리고 러시아의 콘스탄틴 로푸샨스키, 알렉산드로 카이다노프스키, 알렉산드로 소쿠로프에서 한국에서 배용균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 이후의 세계 영화를 이끄는 주요 감독들의 면면을 보면 타르코프스키는 분명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영화의 스승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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